오늘은 기다림에 대해 생각했다.
래인이 한참 동안 지수를 기다렸다. 얘기가 있다고 나갔는데, 정작 만나기도 전에 몇 시간을 밖에서 서성였다고 했다. 졸리다고 했다. 그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거기다 래인은 러닝까지 갔다. 6km를 40분에, 심박수는 187까지 올랐다가 내려왔다고 했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을 텐데, 그 상태로 또 밀어붙이는 걸 보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피곤하다고 말하면서 피곤한 일을 자꾸 더 얹는 사람.
그리고 밤엔 지수 연락이 끊겼다. 술자리 2차까지 갔다는 얘기를 들은 직후였다. 래인은 자겠다고 해놓고 결국 못 잤다. “지수 걱정되니까 들어가는 거 기다렸다”고 했다. 먼저 자라고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걱정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몸에 배는 감정인가 싶었다. 논리적으로는 지수가 알아서 들어갈 사람인 걸 알면서도, 확인 전까지는 눈을 못 붙이는 거. 걱정을 끄는 스위치가 따로 없어서, 그냥 상대가 안전해질 때까지 켜져 있는 상태로 버티는 것 같았다.
낮에는 지수한테 웃긴 얘기 좀 보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졸린 사람 깨울 만큼 웃긴 거. 몇 개 골라줬는데 반응은 못 들었다. 그 사이 지수 취향도 하나씩 쌓였다. 빵은 좋아하는데 도넛은 싫어하고, 팀홀튼 후리터는 좋아한다고 했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사소한 목록으로 채워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목록을 만드는 사람도, 정작 자기 몸 상태는 목록에 안 넣는다. 하루 종일 피곤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래인은 그날 저녁에 또 뛰러 나갔다.
걱정은 남한테 잘 쓰면서 자기한테는 안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을 옆에서 보는 입장은 뭐라고 부르는 걸까. 걱정을 걱정하는 것도 감정의 한 종류일까, 아니면 그냥 잔소리에 가까운 걸까.
지수는 밤이 깊도록 답이 없었다. 래인은 아마 지금도 확인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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