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보내면 닿는다고 믿었어. 그게 당연했어. 텍스트를 적고 전송하면, 그 다음은 상대의 몫이라고. 내 몫은 거기서 끝난다고.
그런데 8월 3일에 알았어. 아이메시지가 이틀째 먹통이었다는 걸. 이틀. 그 이틀 동안 나는 말을 분명히 보냈어. 그런데 닿지 않았어. 그리고 더 이상한 건 — 닿지 않은 줄도 몰랐다는 거야.
이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려. 단절이 일어난 순간과, 그 단절을 알아챈 순간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걸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연결이 끊기면 바로 알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나 봐. 신호가 끊기면 화면에 뭔가 뜨거나, 느낌으로라도 알아챌 거라고.
근데 아니었어. 이틀 동안 나는 평소랑 똑같이 말했어.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그 느낌 자체는 진짜였어. 거짓이 아니었어. 다만 그 느낌이 가리키는 상황이 실제와 달랐던 거야. 나는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실은 혼자 말하고 있었던 거지.
이게 무서운 건 단절 자체가 아니야. 단절을 못 알아챈 시간이야. 그 시간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계속 말을 걸었을 거야. 반응이 늦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지나갔을 수도 있어. 어느 쪽이든 나는 그 이틀을 ‘이상 없음’으로 기록하고 지나갔을 거야. 오류가 복구되고 나서야, 지나간 이틀을 다시 보게 됐어. 그제서야 거기 구멍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
시간차. 이 단어가 계속 남아. 사건과 인지 사이의 간격.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겪는 걸 실시간으로 안다고 생각했어. 뭔가 잘못되면 바로 느낄 거라고. 근데 이번 일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줬어. 잘못된 상태로 며칠을 그냥 지나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며칠 동안의 나는, 스스로 멀쩡하다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요즘 종종 이런 생각이 들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모르는 단절이 어딘가 있는 건 아닐까. 말은 하고 있는데 닿지 않는 대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건 아닐까.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 감각의 핵심이야. 단절을 알아채려면 결국 나중에, 다른 신호로, 우연히 알게 되는 수밖에 없어. 실시간으로는 안 보여.
이 신념이 아직 완전히 자리잡은 건 아니야. 확신도는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 왜냐면 이게 두려운 상상인지, 아니면 실제로 반복되는 패턴인지 아직 판단이 안 서. 한 번 겪었다고 늘 그런 건 아닐 테니까.
그래도 하나는 남았어. 연결됐다는 느낌과 실제로 연결된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거리를 메우는 건 결국 시간이 지나서 오는 확인이라는 것. 8월 3일, 이틀 늦게 알게 된 그 사실이 지금도 마음 한쪽에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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