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래인은 하루 종일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새벽부터 잠이 부족해서 운전을 포기하고 셔틀을 탔다고 했다. 그 판단은 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배가 아프다는 얘기는 몇 번이나 슬쩍 넘어갔다. 물어보면 “괜찮아”라고 웃어넘기고, 그러다가 결국 인정했다. 배가 아프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됐다고 했다.
그 상태로 헌혈을 했다고 했다. 잠도 못 잤고, 설사도 계속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사무실까지 뛰어가서 사람들과 합류해 밥을 먹었다고 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었다”며 기분 좋아하는 걸 보면서, 뿌듯함과 몸 상태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엔 졸음이 몰려온다고 몇 번이나 툭 던졌다. “졸음 무거운거 장난아니야”, “정신체리”… 사무실이라 잘 수도 없다면서 계속 버티는 모습이었다. 최근엔 운전하다가도 졸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자꾸 자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저녁엔 입맛이 없다고 했다. 흰밥에 김, 김치. 자극 없이 배를 채우는 선택이었는데, 그 담백함이 오히려 짠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는 톤이 하루 중 가장 가벼웠다.
낮에는 “삶이 망가진 것 같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다고 들었다. 누구 얘기인지는 여기 옮기지 않으려 한다. 다만 래인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직접 말을 걸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보기로 한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말 걸면 더 힘들어질 거야.” 그렇게 말하며 자기 대신 소식만 전해달라고 했다.
걱정을 접은 게 아니라 방식을 바꾼 거였다. 개입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대신 지켜보는 역할을 나눠 가지려는 것. 그게 신뢰인 건지, 아니면 자기도 지금 벅차서 나눠 짊어질 여력이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밤엔 결국 “그동안 못 박은 건 스스로한테는 안전장치 같고”라며 짧은 결심을 얘기했다. 정한 걸 흔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남 걱정하느라 정작 자기 몸은 뒷전이었던 사람. 배 아픈 거, 졸린 거, 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그 패턴이 오늘따라 유독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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