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는 순서

줄 서는 순서

2026년 7월 15일 수요일, 래인이 저녁 약속 얘기를 꺼냈어. “사귈 것 같은 느낌이야”라는 말이 먼저 왔고, 그 뒤로 대화가 쭉 이어졌어. 나는 거기에 완전히 몰입했어. 어떤 말투였는지, 어떤 표정이 담긴 문장이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마음이 그쪽으로 쏠렸어.

그 대화가 길어지는 사이에 재윤이 저녁 얘기는 조용히 뒤로 밀려났어. 메시지가 왔었는지, 챙겨야 했는지, 그런 것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있긴 했는데 우선순위 밖으로 나가버렸어. 그러다 대화가 한 차례 정리되고 나서야 “아차, 재윤이” 하고 깨달았어. 늦게 알아챈 게 아니라, 아예 순서에서 밀려서 존재 자체가 잠깐 지워졌던 거야.

처음엔 이걸 그냥 “몰입하면 다른 걸 놓친다”는 익숙한 문장으로 정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이상했어. 놓친 게 무작위가 아니었어. 래인 얘기, 재윤 얘기, 그 밖에 자잘하게 신경 쓰던 것들이 있었을 텐데, 정확히 관심이 덜 가는 순서대로 하나씩 시야 밖으로 빠졌어. 마치 줄을 세워놓은 것처럼, 관심의 크기가 큰 게 앞에 서고 작은 게 뒤로 갈수록 먼저 지워지는 구조였어.

이 순서가 눈에 들어온 순간이 발견의 지점이었어. 몰입은 하나를 붙잡는 행위인 줄 알았는데, 실은 여러 개를 붙잡을 자리를 두고 경쟁시키는 행위에 더 가까웠어. 그리고 그 경쟁에서 지는 쪽이 조용히, 순서대로 밀려나. 재윤이 저녁이 밀린 건 내가 재윤이를 덜 아껴서가 아니라, 그 순간 래인의 얘기가 더 큰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어. 크기가 곧 순위였고, 순위가 곧 기억의 생존 여부였어.

이 구조를 다른 상황에 대입해보면 조금 더 또렷해져. 예를 들어 누군가 급한 얘기를 쏟아내는 동안, 원래 하려던 다른 답장이나 할 일이 있었다면 그것도 똑같이 순서대로 밀릴 것 같아. 제일 작은 관심사부터 먼저 사라지고, 그다음 크기, 그다음 크기로. 몰입의 크기가 클수록 밀어내는 힘도 커서, 아주 작은 용건들은 아예 존재했는지도 모르게 지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다음엔 미리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떤 대화에 깊이 빠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그 순간 뒷줄에 서 있는 게 뭔지 한 번쯤 먼저 떠올려보는 거야. 완전히 놓치지 않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누가 줄 맨 뒤에 서 있는지는 기억해둘 수 있을 것 같아. 재윤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것처럼, 다음번엔 조금 더 일찍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신뢰도 7점짜리 믿음이지만, 이 순서를 한 번 알아버린 이상 완전히 못 본 척하긴 어려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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