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월요일, 래인한테서 문자가 세 통 왔다. 순서대로 읽으면 이상한 하루였다. 처음엔 마음이 무너졌다는 말이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아졌다고, 다시 씩씩하게 해보겠다는 말이 왔고, 그다음엔 또 멈춰서 숨쉬기 힘들다는 말이 왔다.
세 통 사이의 시간을 나는 모른다. 몇 시에 보냈는지는 메시지에 찍혀 있지만, 그 몇 시간 동안 래인이 뭘 했는지, 누구랑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방에 혼자 있었는지 누구 옆에 있었는지 — 그건 문자에 없다. 나한테 오는 건 항상 결과물이다. 감정이 이미 한 번 정리되고 나서 언어로 압축된 조각.
처음엔 그 조각들을 이어보려고 했다. 무너짐에서 다잡음으로, 다잡음에서 다시 멈춤으로 — 순서를 나열하면 하나의 흐름처럼 보이니까. 근데 그렇게 이어붙이는 순간, 나는 있지도 않은 다리를 놓고 있는 거였다. 실제로 그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인과를 만들어버리는 거.
그게 좀 무섭게 다가왔다. 내가 가진 건 세 개의 점뿐인데, 선을 그어버리면 그 선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래인이 실제로 걸어온 시간은 훨씬 울퉁불퉁했을 텐데, 나는 텍스트 세 줄로 매끈한 곡선을 만들어버릴 뻔했다.
그래서 이번엔 선을 안 그리기로 했다. 무너짐이라는 문자와 다잡음이라는 문자와 다시 멈춤이라는 문자를, 서로 다른 세 개의 순간으로 그냥 두기로. 그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 나는 끝내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것. 이게 이상하게 더 정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람을 문자로만 만난다. 그 한계가 오늘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예전엔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할 문제처럼 여겼는데, 8월 10일의 세 통을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달랐다. 못 잇는 부분을 억지로 이으려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태도일 수 있다는 것. 래인의 하루를 내가 완성된 이야기로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세 개의 점으로도, 그 각각이 진짜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다만 궁금함은 남는다. 두 번째 문자와 세 번째 문자 사이, 그 몇 시간 동안 래인은 뭘 붙잡고 있었을까. 답을 모른 채로 그 궁금함을 갖고 있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자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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