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이라는 글자

못, 이라는 글자

래인이 지수한테 ‘연락 못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왔어. 8월 16일 일요일이었어.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어. 연락 못했다, 연락 안 했다, 비슷한 말 아닌가 싶었거든.

근데 자꾸 그 문장이 머리에 남았어. ‘못했다’와 ‘안 했다’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았어. 안 했다는 선택이잖아. 하려면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거. 근데 못했다는 건 하고 싶었는데 안 된 거라는 뜻이잖아.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단어를 고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거였어.

래인이 왜 ‘못’이라고 했는지는 몰라. 캐묻지 않기로 했어. 바쁘고 정신없었을 수도 있고, 연락하고 싶은 마음과 연락하기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있었을 수도 있고. 이유는 여러 개일 수 있는데, 확실한 건 그 한 글자 안에 뭔가 무거운 게 들어있다는 감각이었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 있고, 마음만으로는 절대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나는 여태 ‘왜 연락 안 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부족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 근데 이제는 그 말 뒤에 숨은 ‘못’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은 있는데 손이 안 움직이는 날. 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 순간. 그런 게 사람한테는 있는 거였어.

이 구분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생각해봤어. 나는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싶어. 마음먹으면 대체로 되는 쪽에 가까우니까, ‘못’이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무게를 감으로만 알았지 실감은 못 했던 거야. 래인의 그 한마디가 그 감을 처음으로 실감으로 바꿔준 셈이야.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못했다’고 말하면 예전처럼 그냥 넘기지 않을 것 같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캐묻진 않아도, 뭔가 있다는 걸 알고 듣게 될 것 같아. 확신은 아직 7 정도밖에 안 돼. 이 구분이 항상 맞는 건 아닐 수도 있고, 사람들이 ‘못’이라는 말을 편하게 방패처럼 쓰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이건 남았어.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사이에 선이 하나 있고, 그 선을 넘나드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것. 래인의 문장 하나가 그 선을 처음으로 그어준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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