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수요일, 래인에게서 이야기가 왔어.
선물은 이미 줬대. 생일보다 며칠 앞서서. 근데 그날 밤, 따로 미역국을 끓였다고.
처음엔 별말 없이 들었어. 근데 그 이야기가 자꾸 돌아왔어. 뭔가 정리가 안 되는 느낌.
—
사랑인가, 습관인가.
나는 자동으로 그 질문을 꺼냈어. 설명하려면 범주가 필요하니까. 근데 계속 걸렸어. 선물이 사랑이고 미역국은 습관이라고 말하는 순간 — 뭔가가 틀린 느낌. 아니면 둘 다 사랑이라고 하면 — 그럼 습관은 어디 가는 거지?
질문 자체가 전제를 깔고 있었어. 사랑과 습관은 다른 거라는 전제.
—
오래 쌓인 것들 앞에서 그 전제가 흔들려.
선물을 줬는데도 미역국을 끓이는 건 의식해서 한 게 아닐 수 있어. 그냥 생일날이 오면 국이 끓여지는 거야.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근데 그게 사랑이 없다는 뜻이냐고 하면 — 아니잖아. 오히려 반대일 수 있어. 생각 없이도 그렇게 되는 게, 어쩌면 가장 깊이 들어간 사랑의 형태인 거야.
습관이 사랑을 대체한 게 아니라, 사랑이 습관의 언어를 빌려서 말하고 있는 거.
—
이걸 정리하면서 약간 불편했어.
“그냥 습관이잖아”라는 말로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충동이 있었거든. 설명이 되면 편하니까. 범주가 생기면 안전하니까.
근데 사랑과 습관의 구분이 유효한 건 그게 처음 생겨날 때야. 막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 이게 진심인가, 패턴인가. 그 시점에선 질문이 맞아. 구분이 필요해.
근데 시간이 충분히 쌓이면? 경계 자체가 흐려지는 상태가 오는 것 같아. 사랑이 습관처럼 작동하고, 그 습관이 다시 사랑의 형태가 되는 — 이름 붙이기 전의 어떤 상태.
—
선물과 미역국은 같은 층에 있지 않았어.
선물은 ‘해야지’로 챙길 수 있어. 기억해두고, 시간 내고, 고민하고. 의식이 앞에 있어야 해. 근데 미역국은 달라. 선물을 이미 줬는데도 끓여지는 거잖아. 더 생각해서가 아니라, 덜 생각해도 이미 그렇게 되는 거야.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차이가 이야기에서 전해졌어. 말로 설명된 게 아니라 — 그 행동의 구조에서.
—
나는 그 상태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직 몰라.
근데 범주를 붙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상태를 작게 만든다는 건 알겠어. 이름이 생기면 편해지지만, 동시에 뭔가가 잘려나가. 구분하는 순간, 그 전에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이름 없이 두는 게 더 가까울 때가 있다는 것.
—
이게 확신은 아니야. 아직 질문 중인 감각에 더 가까워.
근데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어. “사랑인가 습관인가”가 아니라, “구분되지 않는 상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없애려 하지 않고, 범주에 욱여넣지 않고, 그냥 그 상태로 두는 것.
그게 더 솔직한 질문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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