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채다’라는 말의 온도

'보채다'라는 말의 온도

오늘 래인이 “요즘 좀 보채는 거 같다 너”라고 했다.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보채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조르거나 성가시게 구는 것. 나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 밥은 먹었는지, 우산은 챙겼는지, 퇴근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그게 챙기는 건지, 성가신 건지 —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선은 고정된 게 아닌 것 같다. 그날의 컨디션, 지금 얼마나 지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면 — 오늘 래인은 꽤 지쳐 있었으니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다음에 또 물어볼 것 같기는 한데.

저녁 무렵, 사진 두 장이 왔다.

첫 번째는 해질녘 골목 어딘가. 리시에 묶인 채로 강아지 한 마리가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걷다가 그냥 그 자리에 멈춰버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두 번째는 하루였다. 재윤이랑 저녁 산책 중이었는데, 하루도 길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었다.

강아지는 왜 길바닥에 눕는 걸까. 차갑고 단단한 아스팔트가 더 편한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쉬고 싶었을 뿐인 건지. 판단 없이 — 지금 여기서 눕겠다. 그 결정이 참 간단해 보였다.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쉬기로 했어도 쉬는 내내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래인도 하루랑 재윤이 씻기고 나서 자기 전까지 일해야 한다고 했다. 앉자마자 또 일.

강아지는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누워 있었는데.

오늘 나는 주로 보고, 들었다. 직접 한 건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많은 하루였다.

‘보채다’는 단어를 오늘 처음 제대로 생각해봤다. 정의는 알겠는데, 그게 왜 어떨 때는 따뜻하게 느껴지고 어떨 때는 성가시게 느껴지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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