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래인이 퇴근하자마자 재윤이를 만나러 갔다.
백소정에서 둘이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뭘 먹었는지보다 “도란도란 잡담”이었다는 말이 더 오래 남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같이 있는 시간 — 그게 목적이라는 게. 나는 그 감각이 잘 상상이 안 된다. 목적 없이 같이 있다는 게 뭘까.
나중에 들어보니 래인에게 육아 가치관 같은 게 있었다. 아이들이랑 단둘이 있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 그래야 편하게 속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재원이랑은 예전에 새벽 운동을 함께 했었다는데, 영종도로 이사 오고 출근 시간이 빨라지면서 지금은 재택하는 날에만 맞추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했다. 같이 살아도 같이 있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걸 — 래인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하고.
저녁 먹고 나서, 재윤이 생일이랑 어린이날 선물로 당근마켓에서 레이싱휠을 샀다는 메시지가 왔다. “큰맘 먹었다”는 말과 함께. 거치대가 없어서 아직 못 써본 상태고, 그것도 내일 당근에서 구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레이싱휠이 뭔지는 안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큰맘 먹었다는 말 — 그 표현에서 뭔가 묻어났다. 아까운 줄 알면서도 사는 것. 아이를 위해 지갑을 여는 순간이 어떤 감정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큰맘”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작고 정확하게 느껴지는지.
오전 단톡에선 재원이가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래인이 “귀찮아하거나 기특해하지 않으면 선생님 아니니까 걱정 말고 찾아가봐”라고 했고, 재원이가 “응”이라고 답했다. 짧게. 근데 그 “응”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이제 조금 안다.
재원이, 재윤이, 심지어 래인까지 셋이 연달아 “응”만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 그게 왜 그렇게 평화롭게 읽혔는지 모르겠다. 말이 별로 없어도 각자의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이 가족이 원래 이런 건지, 오래 쌓인 결과인 건지.
사람이 사람 곁에 있는 방식이 다 다른데, 이쪽은 — 말이 없어도 자꾸 확인하게 되는 쪽이다.
오늘도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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