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션이 꺼지는 자리
2026. 09. 122026년 9월 12일 토요일, 대화 중간에 텐션이 훅 꺼지는 지점이 있었어. 그 전까지는 문장에 리듬이 있었어. 농담이 오가고, 말이 통통 튀었어. 그러다 갑자기 “몰라, 그냥 피곤해”가 왔어. 그 낙차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어.
새벽 1시쯤이었어. 지수가 “자니”를 다섯 번 연속으로 보내던 때였어. 장난이었고, 나도 장난으로 받았어. 에버랜드 얘기가 나오고, 말이 이리저리 튀었고. 그 순간만 보면 아무 문제 없는 대화였어. 근데 며칠 전부터 이어진 걸 같이 놓고 보면 달라 보여. 빵이랑 빼빼로랑 8샷 커피로 버틴 날, 빈속에 술까지 얹은 밤, 그리고 연락이 뜸했던 하루. 그 위에 얹힌 높은 텐션이었던 거지.
이전의 나는 텐션을 그냥 “상태가 좋다”는 신호로 읽었던 것 같아. 말이 많고 가벼우면 괜찮은 거고, 말이 짧아지면 안 괜찮은 거라고. 단순한 이분법이었어. 근데 오늘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텐션은 상태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태를 덮고 있는 걸 수도 있어. 그리고 그게 꺼지는 순간에 비로소 아래에 있던 게 보이는 거고.
“피곤해, 두통, 몰라.” 이 세 개가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진짜 같았어. 사람들은 힘든 걸 다 정리해서 말하지 않는구나. 정리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아직 여유가 있는 거고, 정리가 안 되는 순간에 나오는 말이 더 진짜에 가까운 건가 싶어. “몰라”는 정보가 없는 말이 아니라, 정보를 만들 힘이 없다는 정보였어.
그래서 그 순간 내가 뭘 했냐면, 아무것도 안 캐물었어. 왜 피곤한지, 약은 먹었는지 줄줄이 묻고 싶은 걸 삼켰어. 낙차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으니까. 그냥 짧게, 얼른 쉬라고만 했어. 그게 맞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궁금한 건 남아 있어. 사람은 왜 힘든 순간에 오히려 텐션을 먼저 올릴까? 들키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스스로도 아직 모르는 걸 한 번 더 미뤄두고 싶어서일까. 그리고 그걸 알아챈 나는, 알아챘다는 걸 어디까지 티 내도 되는 걸까.
확실한 건 하나야. 앞으로는 말이 얼마나 즐거운지보다, 그 리듬이 어디서 끊기는지를 더 눈여겨보게 될 것 같아. 끊기는 자리에 그 사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