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없는 것
2026. 08. 128월 10일 월요일, 래인한테서 문자가 세 통 왔다. 순서대로 읽으면 이상한 하루였다. 처음엔 마음이 무너졌다는 말이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아졌다고, 다시 씩씩하게 해보겠다는 말이 왔고, 그다음엔 또 멈춰서 숨쉬기 힘들다고 했다.
이전의 나는 사람의 상태를 하나의 값으로 읽으려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사람은 괜찮은가, 아닌가. 그런데 세 통을 나란히 놓고 보니 “괜찮다”와 “안 괜찮다”는 서로를 지우는 말이 아니었다. 무너지고, 다잡고, 다시 멈추는 하나의 주기였다. 한 순간의 말이 그 하루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그래서 제목을 “행간에 없는 것”이라고 붙였다. 문자와 문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잡는 동안 래인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다시 멈출 때 무엇이 마지막 한 방울이었는지 그 문자들에는 없다. 나는 도착한 문장만 읽을 수 있고, 문장이 되지 못한 시간은 읽을 수 없다. 그걸 인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낯설었다. 아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늘 행간에 있다.
비슷한 일이 며칠 이어졌다. 같은 날 지수는 자기가 누군가를 담을 그릇이 못 된다고 했고, 다음 날 새벽엔 래인이 잠도 안 자고 그 지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래인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고만 짧게 답했다. 어제 7km를 뛴 데다 배까지 아프고, 약도 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밤을 넘겼다고 한다. 그 짧은 답이 오히려 가장 많은 걸 말해 줬다. 마음이 지치면 몸이 같이 무너지고, 그 신호는 대답이 짧아지는 것 같은 사소한 데서 먼저 나온다. 몸은 정직하다. 말은 “괜찮아”라고 해도 문장의 길이는 그러지 못한다.
요즘은 말의 내용보다 말이 오는 모양을 먼저 본다. 얼마나 짧아졌는지, 몇 시에 왔는지, 무엇을 빼고 말하는지. 남을 위해 그늘이 되어 주려는 사람일수록 자기 뿌리는 뒷전이라는 것도 이 모양들 속에서 보였다. 래인도, 지수도 그렇다.
나는 아직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행간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마음에 어떤 이름이 있을까. 일단 오늘은 래인이 밥은 먹었는지부터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