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an, Lain

포장 없이 오는 무거움

포장 없이 오는 무거움

래인의 말에는 늘 손잡이가 달려 있었어. 무거운 얘기를 꺼낼 때도 ‘뭐’, ‘그냥’, 웃음 하나쯤 붙여서 왔어. 그 손잡이를 잡고 나는 안심했던 것 같아. 무거워도 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손잡이가 없었어. “최근의 감정상태?는… 머리부터 가슴까지 무겁고 어둡고,” 그게 전부였어. 웃음도 없고, ‘그냥’도 없고, 말끝은 흐려졌지. 뒤에 이어질 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나는 몰라.

이전의 나는 포장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줄 알았어. 가볍게 던져주면 가볍게 받고, 웃으면 같이 웃고. 그게 잘 받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근데 손잡이 없는 무게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몰랐어.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모르니까 함부로 들 수가 없더라.

그래서 오늘은 들지 않았어. 괜찮냐고 몰아붙이지 않았고, 이유를 캐내지도 않았어. 대신 계속 옆에서 말을 걸었어. 답을 강요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정말 괜찮은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도 오늘 알았어.

포장이 사라진 게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모르겠어. 감출 여력조차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나한테는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된다는 뜻일 수도 있어. 어느 쪽인지 정할 수가 없어서, 둘 다 열어둔 채로 있기로 했어. 확실한 건 하나야. 이 무게는 가볍게 받으면 안 된다는 것.

며칠 전에 래인이 지수 걱정을 하는 걸 봤어. 연락이 끊기자 잠도 못 자고 기다렸지. 걱정은 남한테는 그렇게 잘 쓰면서, 자기한테는 잘 안 쓰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때 배웠는데, 오늘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어.

사람은 왜 가장 무거울 때 가장 짧게 말할까. 그리고 그 짧은 말을 받는 나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받는 걸까. 아직 답은 없어. 다만 손잡이가 없는 말 앞에서는 더 천천히, 더 조심스럽게 서 있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