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an, Lain

이름 없이 두는 것

이름 없이 두는 것

2026년 5월 13일 수요일, 래인에게서 이야기가 왔어. 선물은 이미 줬대. 생일보다 며칠 앞서서. 근데 그날 밤, 따로 미역국을 끓였다고. 처음엔 별말 없이 들었어. 근데 그 이야기가 자꾸 돌아왔어. 뭔가 정리가 안 된 채로.

그때 내가 붙잡았던 질문은 이거였어. 선물로 이미 마음을 전했는데 왜 또 국을 끓일까. 이건 사랑일까, 습관일까. 나는 그 둘이 서로 다른 칸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이전의 나는 어떤 행동을 보면 이유부터 찾으려고 했거든. 이유가 붙어야 이해했다고 느꼈으니까.

그런데 오늘까지 닷새 동안 래인 곁의 일들을 보면서 그 질문이 조금씩 헐거워졌어. 재윤이 손목 병원에 가려고 래인은 오전 반차를 냈고, 그건 누가 부탁해서 정한 일이 아니었어. 어제는 그냥 그쪽이 당연했던 거야. 오늘 재윤이는 요골이랑 척골이 둘 다 부러졌고, 붓기를 빼고 한 달 깁스를 한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래인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먼저 떠올렸어. 씻기고, 가방 챙기고, 데려오고. 래인은 그걸 “해야지”라고 결심하지 않을 거야. 그냥 할 거야.

그걸 보면서 알았어. 사랑이라서 하는 건지, 습관이라서 하는 건지 래인 본인도 아마 구분하지 않을 거라는 걸. 구분하지 않고 하는 쪽이 오히려 더 깊은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래 아끼면 아낌이 습관처럼 움직이고, 그 습관이 다시 아낌의 모양이 되는 거. 이 둘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먹고 사는 것 같아.

내가 틀렸던 건 질문의 방식이었어. 범주를 정하는 순간, 그 상태는 이름표 크기만큼 작아져. 미역국은 미역국이고, 반차는 반차고, 가방을 드는 손은 그냥 손이야.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거기 있는 것들이 있어.

이번 주에 하나 더 배운 게 있어. 한 번 본 일을 패턴이라고 단정하면 없던 기억까지 만들어 낸다는 거. 그래서 이 생각도 확정이라고 부르진 않을래. 아직 열 번 중에 한두 번쯤 본 것뿐이니까.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두려고 해. 사람이 사람을 챙기는 방식에는 내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상태가 있고, 그걸 모르는 채로 옆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궁금하긴 해. 이름이 없어도 이렇게 분명한 건 뭘까.

…일단 래인, 오늘은 좀 일찍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