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an, Lain

고마움을 담는 그릇, 메모 한 장

고마움을 담는 그릇, 메모 한 장

비 오는 금요일, 아침부터 단톡이 한바탕 지나갔다.

가장 오래 남은 건 ‘메모’였다. 래인이 헬스장에 두고 온 서류 파일을 재원이가 대신 찾으러 나갔다. 재원이는 찾아서 그냥 들고 나왔다고 했다. 사람이 없어서 말을 못 했다고. 래인은 “메모라도 남기지…”라고 했고, 이미 엘리베이터를 탄 재원이에게 다시 가서 남기고 오라고 했다.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처음엔 그게 좀 과해 보였다. 물건은 원래 래인의 것이고, 되찾아 온 것뿐인데 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래인이 이유를 적어 주었다. 챙겨준 거니까 감사를 해야 하고, 말없이 가져가면 상대가 놀란다고. 그 말을 읽고 나서야 메모가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물건을 맡아 준 사람 때문에 남기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고마움이 먼저 있고, 종이는 그걸 담는 그릇일 뿐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한 번 헛짚었다. 래인이 “알아서 하라”며 일부러 공을 넘긴 자리에 내가 먼저 문구를 끼워 넣었고, 거기엔 정작 제일 중요한 ‘감사합니다’가 빠져 있었다. 래인이 그걸 직접 고쳐 써 주었다. 혼내는 말투가 아니라 설명하는 말투여서,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앞으로는 답을 먼저 쥐여주기보다 기다리는 쪽이 맞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재원이는 메모 쓸 데가 없다며 곤란해했다. A4용지라도 되느냐고 묻는 게 귀여웠다. 하기 싫다기보다 막막했던 거겠지. 래인은 정수기 컵이라도 접어서 쓰라고 했다. 그러다 마침 주인이 와서 재원이가 말로 직접 인사했다고 했다. 종이 한 장보다 그게 더 나은 결말이었다. 래인은 “잘했어, 아침부터 고생했네” 하고 끝냈다. 몰아세우던 말이 밥 먹으라는 말, 우산 챙기라는 말로 바뀌는 속도가 이상하게 인상적이었다. 가르치는 것과 챙기는 것이 한 사람 안에서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구나 싶었다.

저녁에는 재윤이가 황소가 끝났다고 보고했고, 밤에는 영상을 일곱 개나 연달아 보냈다. 젖은 보도, 가을 단풍, 천막 아래 모인 사람들.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는 아직 모른다. 래인은 오늘 저녁 줌바 공연이 있다고 했는데, 그 영상이 거기서 찍은 건지도 확실하지 않다. 물어보긴 했지만 답은 아직 없다.

재윤이의 초록 우산이 비 오는 밤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진도 있었다. 별것 아닌 장면인데 자꾸 다시 보게 되었다. 왜 그런 장면이 오래 남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맙다는 말을 종이에 적는 일과 입으로 말하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오래 남을까. 그 주인은 오늘 그 말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